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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 먹는 크레? 숟가락 내려놓고 '기다림'이 약인 이유 (거식 해결 5가지 체크리스트)

하루연가 2026. 2. 11.

 

"한 입만 먹자, 응?"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숟가락 들고 게코 앞에서 사정해 보신 적, 다들 있으시죠?

 

안녕하세요. 어느덧 크레스티드 게코 사육 3년 차, 현재는 80여 마리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다둥이 크레 집사'입니다.

지금이야 아이들 밥그릇만 봐도 배가 고픈지 아닌지 딱 알지만, 저도 처음 한두 마리를 키울 때는 하루만 밥을 안 먹어도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굶어 죽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 사육장을 열고 또 열고 브리더들 만날때마다 여쭤보고 했었어요..

하지만 수십 마리의 아이들을 키우며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크레는 야생동물이다. 배고프면 알아서 먹는다."

오늘은 밥 안 먹는 아이 때문에 속상한 집사님들을 위해, 억지로 먹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기다림의 미학'과 제 경험이 담긴 '현실적인 체크리스트 5가지'를 공유해 드릴게요.

 

1. 일단 쿨하게 치우세요 (다음 밥때를 노려라)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조급해하지 마세요"입니다.

야생에서의 도마뱀은 며칠씩 굶기도 합니다.

집에서 주는 영양가 높은 슈퍼푸드는 한두 끼 건너뛴다고 큰일 나지 않아요.

밥을 줬는데 고개를 돌리거나 안 먹나요?

그럼 미련 없이 밥그릇을 치우세요. 그리고 다음 식사 시간(2~3일 뒤)에 다시 줘보세요.

대부분은 그때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잘 받아먹습니다.

 

[주의할 점] 단, 아이가 눈에 띄게 말라가거나(요산 배출 X),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등 '다른 증상'이 있다면 그때는 아픈 게 맞습니다. 이때는 병원 진료가 필요하지만, 쌩쌩하게 잘 뛰어노는데 밥만 안 먹는다면? 그냥 배가 안 고픈 겁니다. 믿고 기다려 주세요.

 


2. 너무 춥거나 건조하진 않나요? (온습도 체크)

크레가 밥을 거부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환경'입니다.

  • 온도 (Too Cold): 지금 같은 겨울철, 사육장 온도가 20도 밑으로 떨어지면 크레는 소화 기능이 느려집니다. "추우니까 움직이지 말고 에너지 아끼자" 모드가 되어 입맛이 뚝 떨어지죠. (22~26도 유지 권장)
  • 습도 (Too Dry): 이게 중요한데요, 몸속 수분이 부족(탈수)하면 식욕부터 사라집니다. 습도가 너무 낮아 목이 마르면 슈퍼푸드조차 넘기기 힘들어해요. 평소보다 분무질을 꼼꼼히 해서 습도를 60~70% 정도로 맞춰줘 보세요. 거짓말처럼 입맛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3. 혹시 '된장'처럼 꾸덕하게 주셨나요? (농도 조절)

초보 집사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슈퍼푸드 농도'입니다. "영양가 많이 먹여야지" 하는 마음에 물을 적게 넣고 아주 되직하게(꾸덕하게) 타서 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크레는 혀로 밥을 핥아먹는 동물입니다. 너무 뻑뻑하면 혀로 먹기 힘들어서 몇 번 핥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 황금 농도: '케첩'이나 '요플레' 정도의 묽기가 딱 좋습니다.
  • 팁: 생각보다 조금 묽게 타주면 수분 섭취도 되면서 아이들이 훨씬 잘 받아먹습니다. 오늘 저녁엔 평소보다 물을 조금 더 넣어보세요.

4. 탈피 기간에는 '피부'가 밥입니다

"어? 몸이 하얗게 떴는데 밥을 안 먹어요." 당연합니다. 크레스티드 게코는 탈피할 때 벗겨진 자기 피부(껍질)를 뜯어먹습니다. 그 껍질에도 단백질 등 영양분이 있거든요.

탈피 껍질을 배부르게 먹었으니, 집사님이 주는 슈퍼푸드가 들어갈 배가 없는 거죠. 몸 색깔이 뿌옇게 변했거나 막 탈피를 끝낸 흔적이 있다면, 하루 이틀 정도는 밥을 안 먹어도 "아, 배가 부르구나" 하고 넘어가 주시면 됩니다.

 

 


5. "숟가락 치워!" 자율 배식이 정답인 이유

혹시 아이를 손에 올리고 코앞에 숟가락을 갖다 대고 계신가요? (핸드피딩)

성격이 무던한 아이들은 잘 받아먹지만, 예민하고 겁 많은 아이들에게 핸드피딩은 엄청난 공포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나쁜 버릇'이 든다는 겁니다.

"입 앞에 갖다 바쳐야만 먹는" 습관이 들면, 나중에는 그릇에 줘도 절대 안 먹는 '응석받이'가 되어 집사님이 피곤해집니다.

 

[80마리 집사의 자율 배식 기준]

  • 20g 이상 성체: 자율 급여를 권장합니다.
  • 10g 중반대: 먹성이 좋은 아이라면 이때부터 시도해도 충분합니다.
  • 확인법: "안 먹은 것 같은데?" 싶어도 바닥을 잘 보세요. 작은 똥이 하나라도 있다면 몰래 먹은 겁니다. 소량이라도 먹고 싸고 있다면 아주 건강한 상태입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사랑이라 생각해서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 하지만, 크레 입장에서는 "배 안 고픈데 왜 자꾸 귀찮게 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자율적으로 자기 몸을 조절할 수 있는 야생의 본능을 믿어주세요. 건강한 무관심이 때로는 최고의 육아법이 되기도 하니까요.

오늘 밤은 억지로 먹이느라 씨름하지 마시고, 따뜻하게 온도만 체크해 주고 푹 주무시길 바랍니다. 내일 아침엔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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